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벤저민 프랭클린 (문단 편집) === 인쇄공 프랭클린 === 1706년 1월 [[보스턴]]에서 태어나 가난한 양초장이인 [[청교도]] 조사이아 프랭클린(Josiah Franklin, 1657 ~ 1745)의 아들로 17자녀 중 15남으로 태어났다. 글을 일찍 배웠지만 돈이 없어 학교는 2년 밖에 다니지 못하고 형 제임스 프랭클린의 인쇄공 도제로 5년을 지낸다. 이때 시에 빠져 시 쓰기에 열심이었던 벤저민은 아버지가 했던 "시인 되면 평생 거지로 산다."라는 말을 듣고 시 공부를 접는다. 1721년 윗형인 제임스 프랭클린(James Franklin, 1697 ~ 1735)이 주간지 <뉴잉글랜드 커런트>를 창간하자 다음 해에 16살의 프랭클린은 신문에 기고문으로 14편의 사회 평론을 작성하다가 형 제임스가 쓴 글로 출간 금지를 당했다. 형은 벤저민에게 [[바지사장]] 격으로 신문 발행인을 맡겼지만 서로 트러블이 끊이지 않으며 곧 일을 때려치웠는데, 사이가 아주 안 좋아진 형 제임스가 모든 동네 인쇄소에서 벤저민을 욕하고 일을 못하게 해서 보스턴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, 결국 [[필라델피아]]로 가서 한동안 거지꼴로 지낸다. 이후 정착해 인쇄업을 하던 프랭클린은 [[영국]] [[런던]]에서 인쇄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고 미국에 돌아와 1728년 인쇄소를 차리면서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한다. 점점 사업이 커지면서 [[펜실베이니아]] 지폐 인쇄권까지 얻게 되고 1729년 <펜실베이니아 가제트>를 창간한다.[* 프랭클린은 이 신문에 세계 최초로 만화를 삽입하고 도서관에 비치했다고 한다.] 이후에도 여러 인쇄 사업이나 사회 사업을 벌리고 [[청교도]]적인 근면함과 저축으로 급기야는 부동산 투자를 할 정도로 큰 돈을 벌게 된다. 여기까지만 봐도 그의 젊은 시절은 서점 주인이자 인쇄소 주인이자 출판사 사장으로서 살아왔지만 사실 프랭클린은 미국의 초창기 문학을 이끌었던 미국 초기의 유명 문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. 프랭클린은 자신이 창간한 <펜실베이니아 가제트>에 1732년부터 1757년까지 '리처드 손더스'라는 필명으로 《가난한 리처드의 연감》이라는 책을 펴냈는데, 달력, 일기 예보, 명언, 시, 심지어는 수학 문제 등 잡다하게 많은 내용을 실은 연보였다. 특히 당시 해당 시장을 쥐고 있던 경쟁자 타이탄 리즈의 사망 소식을 허구로 꾸며낸 뒤 여론을 선동해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경쟁자를 제거한 적이 있다. 그렇지만 프랭클린이 직접 쓴 속담이나 명언들도 많아서 당시 식민지 미국의 언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. 미국 영어를 영국 영어와 완전히 단절하려고 하였고, 독일어나 스페인어처럼 영어의 발음과 철자를 1:1로 맞추려고 했다. 예를 들어 영어단어 "ace"를 "eis"로 표기하려고 제안한 것이다. 하지만 기존 표기법에 익숙한 사람들의 습관을 간과했기 때문에 이는 실패하고 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